기록, 복기/04. 생각

나는 누구인가: 라는 거울

Kila 2024. 12. 11. 01:04

2022년 뜨거운 여름날, Audio Visual 툴 Touchdesigner와 3D 툴 Blender를 활용해 16분짜리 영상 작업을 완성했다. 그 작업은 당시 나의 고민과 상상이 뒤섞인 결과물이었다. 최근 오래된 파일을 정리하다가, 작업 과정 속에서 휘갈겨둔 노트를 우연히 발견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노트와 작업을 다시 읽어보며 새로운 시선으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시 참여] 2022 뉴미디어 매체확장 활성화 사업 파이프라인_기술랩 Touchdesigner 사용

 

16분 중 초반 시작. 배경음은 radiohead의 초기 음원을 썼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거울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은 살면서 몇 번이고 떠오른다. 때로는 진로를 고민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실패와 마주했을 때.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 질문을 마주하면 선뜻 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답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복잡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이 질문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지만, 동시에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묻게 한다. 단지 현재의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답을 찾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설령 한때 내가 “이것이 답이다”라고 생각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질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나는 이러한 반복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마치 답이 없는 시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는 것처럼.

 

그런데도 나는 이 질문을 놓지 못했다.

 

처음에는 생각만 했다. 왜 이런 질문이 나를 괴롭히는지 이유를 찾으려 했고, 이유를 찾지 못한 채로 그저 생각 속에 머물렀다. 생각의 끝에서 멈춘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바로 작업이었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질문을 손으로 풀어내고,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희망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 바로 SAPY 전시에서 참여했던 [Trial and Error]였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고, 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의 시작점에는 알(구)가 있었다. 구는 단순히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탄생과 귀환, 시작과 끝이라는 순환적 구조를 담고 있는 상징이었다. 구는 모든 것이 시작되는 동시에 모든 것이 돌아가는 지점을 나타냈다. 그것은 안정적이고 완벽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변화와 불완전함, 그리고 끝없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작업을 마친 후, 나는 스스로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과연 그 답을 찾았을까?

 

알에서 시작된 인간의 여정은 단순한 예술적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출발한 여정이었다. “우리는 맨몸으로 태어나 끊임없는 경험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목표를 이루고, 결국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나는 이 메시지를 인간이 겪는 감정과 경험의 흔적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표현하며, 삶의 본질과 순환적 구조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작업의 중심에는 알(구)가 있었다. 구는 시작과 끝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였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주인공인 인간(A)은 이 구에서 걸어나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는 단순히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물리적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불안정한 가능성과 순환을 포함한 존재였다. 인간(A)은 그 안에서 태어나지만, 그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자신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불안정한 첫걸음: 넘어짐과 떠오름

 

구에서 걸어나온 A는 처음부터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알에서 갓 깨어난 생명체처럼,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법조차 완전히 익히지 못한 듯 보였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작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그 넘어짐은 단순히 물리적 동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환경에 첫 발을 내딛는 인간이 겪는 본질적인 혼란과 불안정함을 상징했다.

 

A는 넘어졌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손을 짚으며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그의 모습은 스스로를 다시 세우려는 인간의 노력 그 자체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처음에는 불안정했지만, 점점 더 바닥과 공간을 탐구하는 움직임으로 변했다.

바닥은 처음에는 흙빛이었다. 거칠고 단단했지만, 동시에 따뜻한 감촉을 가지고 있었다. A는 바닥에 누운 채로 잠시 멈춰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바닥의 질감을 느끼고, 주변 공간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였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이 놓여 있는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미지의 반동: 구와의 상호작용

 

A가 움직임을 다시 시작하자, 그의 뒤에서는 구가 회전을 이어갔다. 다양한 형태의 구는 단순히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회전하면서 파동을 만들어냈다. 그 파동은 A의 움직임에 은은히 영향을 미쳤다. A가 발을 내딛는 순간, 구의 회전 속도가 미묘하게 변했고, 그것은 다시 A에게 돌아왔다.

A는 점점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달림은 단순히 물리적 움직임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탐험이었다. 달리면서 그는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구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움직임을 조율했다. 그의 발 아래에서 바닥은 계속 변했다. 때로는 단단하고, 때로는 유동적이었다.

 

A는 구를 떠나 있지만, 구의 회전은 여전히 그의 움직임에 반향을 일으킨다. 구는 멀리 떨어진 듯 보이지만, A의 선택과 걸음을 통해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질문이 답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삶을 이끄는 것과 같았다.

 

떠오름: 중력과 유영의 사이에서

 

갑자기, A는 바닥에서 살짝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여전히 바닥에 닿아 있는 듯 보였지만, 동시에 미묘하게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바닥은 더 이상 단단한 땅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움직임과 반응하며, 그를 끌어올리는 힘을 발휘했다. A는 이 떠오르는 감각 속에서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이 바닥과 공간에 동시에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했다. 바닥은 단순히 그를 지탱하는 물리적 기반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과 내면의 감정을 반영하는 존재가 되었다. A는 이 부유하는 상태에서 주변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공기의 진동까지도 느끼기 시작했다.

 

미지의 반동: 구와의 상호작용

A가 움직임을 다시 시작하자, 그의 뒤에서는 구가 회전을 이어갔다. 구는 단순히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회전하면서 파동을 만들어냈다. 그 파동은 A의 움직임에 은은히 영향을 미쳤다. A가 발을 내딛는 순간, 구의 회전 속도가 미묘하게 변했고, 그것은 다시 A에게 돌아왔다.

 

A는 점점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달림은 단순히 물리적 움직임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탐험이었다. 달리면서 그는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구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움직임을 조율했다. 그의 발 아래에서 바닥은 계속 변했다. 때로는 단단하고, 때로는 유동적이었다.

 

귀환: 변화된 바닥 위에서

 

마지막에, A는 다시 멈춰 섰다. 그는 처음처럼 바닥에 몸을 눕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과는 다른 감각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바닥은 더 이상 흙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처음의 바닥이 생명과 안정감을 상징했다면, 이번 바닥은 열정과 고통, 그리고 변화를 상징했다.

A는 다시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새로운 바닥과 연결되었다. 그는 바닥을 통해 세상을 느꼈고, 그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그는 구와 공간, 그리고 자신을 연결하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했다.

 

끝없는 순환 속에서의 발견

 

의 여정은 단순히 시작과 끝으로 나뉘지 않았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환이었다. A는 구에서 나와, 다시 변화된 바닥 위에서 멈췄다. 그의 여정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바닥은 또 다른 시작을 암시했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인간이란 끊임없이 변하고 순환하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첫걸음에서 넘어지지만, 그 넘어짐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구와 바닥, 그리고 A의 움직임은 단순히 시각적 표현이 아니라,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다.

 

답을 찾기 위한 여정, 아니면 질문을 깊게 만드는 여정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질문에 답을 얻기보다는 질문 자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알에서 걸어나온 인간(A)의 첫 발걸음을 구상하며, 나는 A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그가 불안정하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주위를 탐색하는 과정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내 삶의 조각들을 떠올렸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작업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를 얻었지만, 그것이 곧 답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작업을 마칠수록 이 질문은 더 많은 갈래를 만들어냈다. 나는 작업을 시작하며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끝에 이르렀을 때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확실한 답이 아니라, 그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찾았을까?“라는 질문의 무게

 

작업을 마친 후에도 질문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그 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은 질문에 머무르며 발견한 과정들이었다.

 

A가 구에서 나와 첫 발을 내딛는 장면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시작의 감각을 알려주었다. 불완전한 첫걸음, 넘어짐, 그리고 일어섬의 반복은 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찾았다”는 표현이 꼭 고정된 결론을 의미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찾았다”라는 말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멈추게 하는 행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구의 회전이 A의 움직임에 계속 영향을 미치듯, 우리의 질문은 항상 새로운 답을 요구하며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답을 찾는 순간 질문은 정지하고, 우리는 변화와 가능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A가 끝없이 달리고 멈추며, 다시 구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발견하듯, 나 또한 답을 찾으려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답이 아니라, 그 여정 자체가 나의 존재를 정의한다.

 

이때 내가 했던 작업들은 아래처럼 대부분 암울하고 복잡하다. 어쩌면 이때의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던 시절이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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