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톤에 참여하며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디자인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팀장으로서 기획 단계에서 깊이 개입했고,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의견을 나눴다. 마지막에는 발표 자료를 만들고 대표로 나서서 팀의 결과물을 발표했다. 과정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발표 순간만큼은 묘하게도 즐거웠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내가 이 어렵고 세밀한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정진해야겠다는 노트를 얻은거지.
나는 늘 이랬다.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는 전혀 떨리지 않다가도, 직전이 되면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찾아온다. 발표가 시작되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떨리면서도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고요함이 찾아온다. 긴장과 몰입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 순간, 나는 어딘가에 완전히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그날 발표를 마친 후, 문득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조급히 바라보던 시선이 서서히 멀어지며, 숲 전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
이 감정은 무엇일까?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큰 그림을 파악하는 시선. 어쩌면 나는 지금 그 시선을 배워가고 있는 과정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작은 것에만 집중할 때는 보이지 않던 흐름이, 한 걸음 물러서니 하나의 전체로 보이기 시작한거지.
요즘 나는 일부러 멀리서 떨어져 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삶의 문제들, 해야 할 일, 고민거리들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느 순간 그 작은 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숲처럼.
숲은 처음에는 그저 무질서하고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 하나하나에는 고유의 형태와 질서가 있고, 서로 엮이며 전체를 이룬다.
내가 그동안 길을 잃었다고 느꼈던 순간들, 막막하게만 보였던 문제들은 어쩌면 너무 가까이에서만 나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잠시 멈춰서서 숲을 바라보면 된다. 그 속에서 나무와 나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게 된다. 문제의 단편이 아니라 문제를 둘러싼 흐름과 맥락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살면서 나도 숱한 나무들 속에서 길을 잃곤 했다. 눈앞의 작은 문제들에만 집중하다 보면 길이 막힌 듯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멈춰서서 한 걸음 물러나면, 길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보이지 않았을 뿐.
숲을 바라보는 것은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하나는 세부를 놓치지 않는 미시적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거시적 시선이다. 내가 해커톤에서 디자인과 기획을 연결하고 팀을 대표해 발표했던 것도 결국 이 두 시선을 함께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인생에서도 이러한 시선을 적용하려 한다.
가까이에 있는 나무를 돌보고, 때로는 멀리서 숲 전체를 조망하며 나의 길을 찾아가는 것.
우리는 모두 각자의 숲을 걷고 있겠지. 숲은 때로 혼란스럽고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우리가 나무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보면, 길은 이미 그곳에 있을지도.
두려워말자. 나무를 돌보다 길을 잃는다면, 그저 잠시 멈춰서 숲을 다시 바라보면 된다.
길은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 숲 속에서 나만의 길을 걸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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